75회 칸 초청…송강호 기분 설레고 즐거운 일

마지막 업데이트: 2022년 4월 2일 | 0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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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6(Чт) 15:36:30

베이비 박스를 둘러싸고 관계를 맺게 된 이들의 예기치 못한 특별한 여정을 그린 영화 '브로커'가 오는 5월 17일 개막하는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75회 칸 초청…송강호 기분 설레고 즐거운 일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이 영화는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첫 한국 영화 연출작이자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이지은, 이주영의 탄탄한 캐스팅 조합으로 기대를 모으는 영화다.

칸 영화제의 공시 초청 소식에 송강호는 “칸 영화제에 함께한다는 것은 언제나 기분 설레고 즐거운 일이다. 무엇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 그리고 동료 배우들과 이 좋은 소식을 나눌 수 있게 되어 영광스럽고 감사하다”고 전했다.

송강호는 2006년 괴물(감독주간)을 시작으로 이번 '브로커'까지 7번째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게 됐다. 이는 한국 배우 최다 초청 기록이다.

2020년 '반도'(공식 선정작)에 이어 두 번째 칸에 초청받은 강동원은 “모두가 온 마음을 다해 촬영한 작품인 만큼 이렇게 기쁜 소식을 듣게 되어 너무나 뜻깊고 감사하다. 칸 영화제에 이어 개봉도 앞두고 있기에 관객들과 함께 할 순간이 그 어느 때보다 기다려진다”고 전했다.

배두나는 “기쁘고 영광이다. '공기인형'에 이어 12년 만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과 두 번째로 작업하게 된 것만으로도 내게는 특별한 영화이다. 아직 영화를 못 봤는데 칸 뤼미에르 극장에서 처음으로 영화를 보게 되면 너무 좋을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배두나는 2006년 '괴물'(감독주간), 2009년 '공기인형'(주목할만한 시선), 2014년 '도희야'(주목할만한 시선)에 이은 네 번째 칸 진출이다.

이번 '브로커'를 통해 통산 8번째 칸 국제영화제에 진출하게 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도 소감을 남겼다.

그는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적 차이를 초월하여 이뤄낸 이번 작업을 높게 평가받음으로써 저뿐만 아니라 작품에 참여한 모든 스태프와 출연 배우들이 함께 보답을 받게 된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이 작품으로 4년 만에 칸 국제영화제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비단 코로나19 팬데믹 상황뿐 아니라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운 이 시기에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고 세상에 전달하는 일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브로커' 초청에 대해 에리 프레모 칸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일본 거장 감독인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한국 배우 송강호와 함께 매력적인 한국 영화 '브로커'로 돌아온다”고 초청 이유를 밝혔다. 영화는 오는 6월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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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6(Чт) 15:3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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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한국] 인기 유튜브 키즈 채널 ‘보람튜브’의 상표를 제3자가 먼저 출원한 사실이 비즈한국 취재 결과 확인됐다. 상표를 먼저 출원한 사람은 유튜브, 팟캐스트 등을 제작하는 크리에이터의 상표를 미리 등록해 타인에게 팔거나 사용료를 요구하는 ‘상표 브로커’로 추정된다.

아역배우 보람이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보람튜브 브이로그’​와 ‘보람튜브 토이리뷰’의 구독자 수를 합하면 3600만 명이 넘는다. ​​사진=보람튜브 브이로그 캡처

보람튜브는 ‘Boram Tube Vlog [보람튜브 브이로그]’, ‘Boram Tube ToysReview [보람튜브 토이리뷰]’ 채널로 총 3600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아역배우 ‘보람’이 직접 진행하는 브이로그 영상과 장난감 리뷰 영상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으며, 국내 유튜브 콘텐츠 중 최고의 광고 수익을 75회 칸 초청…송강호 기분 설레고 즐거운 일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람튜브 유튜브의 콘텐츠를 제작하는 ‘주식회사 보람패밀리’는 7월 11일 ‘보람튜브’ 명칭으로 38류(인터넷방송업)에 상표를 출원했다. 하지만 이미 1월 28일 A 씨가 ‘보람튜브 BORAM TUBE’​ 명칭으로 38류에 상표를 출원한 상태였다.

A 씨는 구독자 3600만 명 이상을 보유한 보람튜브 채널과는 무관한 인물로 추정된다. 9월 18일 특허청은 A 씨가 출원한 상표에 대해 ’보람패밀리가 사용 중인 ‘보람튜브’와 동일·유사한 표장이며, 부당한 이익을 얻으려 하거나 특정인에게 손해를 가하려고 하는 등 부정한 목적을 가진 상표사용으로 판단된다‘는 내용이 담긴 의견제출통지서를 발송했다.

A 씨가 출원한 ‘보람튜브 BORAM TUBE’​ 상표는 현재 ‘출원/이의 신청을 위한 공고’ 단계로, 특허청이 심사를 완료한 후 출원의 등록에 대해 이의를 받고 있는 상태다.

공우상 공앤유 특허사무소 변리사는 “의견제출통지서를 받고도 출원공고가 됐다는 건 A 씨 측에서 의견제출통지서의 거절 의견을 극복했다는 뜻이다. A 씨 측이 제출한 의견서를 살펴보니 ‘알로하 보람튜브’라는 명칭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데, ‘보람튜브’​와 달리 ‘알로하 보람튜브’​는 아이가 등장하지 않는 완구 리뷰이기 때문에 콘텐츠가 달라 오인·혼동의 염려가 없다고 주장했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이러한 의견이 받아들여진 게 의문이다. 보람패밀리​가 잘 대응해야 하는 상황으로 보인다”75회 칸 초청…송강호 기분 설레고 즐거운 일 75회 칸 초청…송강호 기분 설레고 즐거운 일 라고 전했다.

보람튜브를 제작하는 ‘주식회사 보람패밀리’​의 상표 출원에 앞서 제3자가 먼저 ‘​보람튜브 BORAM TUBE’ 명칭으로 상표를 출원했다. 사진=특허정보검색서비스 키프리스 캡처

‘보람튜브’ 사례와 같이 크리에이터의 상표를 노리는 ‘상표 브로커’​가 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크리에이터들이 의류, 문구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이름의 영향력이 커진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얼마 전 구독자 386만 명을 보유한 인기 유튜버 보겸이 유튜브 채널에서 “올해 8월 6일 보겸TV’의 상표를 아무 상관없는 B 씨가 먼저 등록한 사실을 제보받았다”고 언급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비즈한국 취재 결과 B 씨는 ‘보겸TV’ 외에도 인기 있는 유튜브 채널 명칭으로 여러 개의 상표를 먼저 출원했다. B 씨는 구독자 991만 명의 키즈 유튜브 채널 ‘토이몬스터’, 구독자 443만 명의 키즈 유튜브 채널 ‘서은이야기’의 상표도 ‘보겸TV’ 상표를 출원한 날과 같은 날 출원했다.

특허청은 위 사례와 같은 상표 브로커 피해를 방지하고자 정보제공, 이의신청, 무효심판, 선사용권(타인이 상표 출원을 하기 전부터 사용하고 있던 상표는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제도) 등의 제도를 마련해 놓았다. 하지만 상표출원을 먼저 한 사람에게 상표권을 우선적으로 부여하는 선출원주의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문제가 생기기 전에 상표를 미리미리 출원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크리에이터 소속사 ‘샌드박스’와 여러 차례 일한 공우상 공앤유 특허사무소 변리사는 “기업에 비해 크리에이터와 같은 개인은 상표권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부랴부랴 상표를 등록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인기 유튜브 채널의 경우 주지나 저명성에 따라 뒤늦게 등록해도 인정해주기도 하지만 이를 증명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공 변리사는 “​자신이 주지되거나 저명하다는 걸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누군가 상표를 등록한 뒤 다시 가져오기는 간단하지 않다. 출원 자체의 비용은 크지 않지만 분쟁 해결 비용은 크다. 가장 좋은 건 내 콘텐츠를 생산하기에 앞서 상표를 등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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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출간일 2020년 08월 1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632쪽 | 153*224*35mm
ISBN13 9788964452257
ISBN10 8964452259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제1장 정착민들의 세계 67
개척자로서의 이주민 68
제국주의의 선봉에 선 상인들 73
중국 제국주의와 싸우다 80
‘현지인들’의 정치적 협력 84
철도건설 로비 90
일본의 ‘문명화 사명’ 93
실패한 맬서스주의의 꿈 98
정착민 사회의 성장 105
경성을 정착민 도시로 만들다 113
정착민들의 일상과 문화 120
접촉의 두려움 135

제2장 정착민들과 국가: 불안한 동반자들 147
이토 히로부미의 ‘자치’정책에 대한 정착민들의 공격 150
애국계몽운동에 참여한 일본인 고문들 156
정착민들의 조선합병 요구 166
동화정책 171
제국의 확장구상을 둘러싼 충돌 179
정착민 자치옹호 188
동화에 대한 불안 194
결론 200

제3장 화합의 제국건설 207
사이토의 문화정치 211
정착민들의 대응 216
고문과 정보원 역할을 한 정착민들 220
친일부역자들 양성 226
동화 캠페인: 동민회(同民會) 235
내선융화의 풀뿌리 요원들 250
융화운동의 한계 256
결론 260

제4장 조선과 조성인에 대한 담론 263
식민지 아카이브의 출현 265
문화적 제국주의 대(對) 문화적 민족주의 287
식민지 백성의 목소리를 들어라 293
변화하는 조선 민족주의 평가 302
결론 311

제5장 조선의 산업화 315
식민지 산업의 불편한 동반자들 317
조선의 산업을 위한 로비 331
조선의 경제적 민족주의 347
결론 356

제6장 정치적 목소리를 찾아서 361
정착민 정치권력의 한계 363
더 큰 지방자치를 위한 로비 372
참정권과 자치 사이 385
접근전 394
본국의 조선 자치옹호 405
결론 412

제7장 만주(滿洲)의 충격효과 419
만주 열기의 조성 422
조선인의 국민자격 요구와 일본인 정착민들의 반응 433
만주 시장의 장악 438
전쟁동원 준비, 교화(敎化)운동 444
일상생활의 개선과 여성설득 452
청소년 선도 461
종교적 수양 468
결론 476

제8장 총력전 체제 아래의 국민과 신민 479
국민정신총동원 482
내선일체의 이데올로그: 녹기연맹 489
국민정신총동원운동 평가 501
일본 국민이 된 조선인들 507
결론 524

부록
1. 1910~30년 기간에 경성(京城)에 거주한 일본인 정착민 지도자들 544
2. 구술자료 549

저자 소개 (2명)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에서 조선으로 건너온 70만 일본인의 밝혀지지 않은 역사!

일제강점기 아래, 경성(京城)에서는 미나카이(三中井)백화점, 히라타(平田)백화점, 미쓰코시(三越)백화점과 더불어 초지야(丁子屋)백화점이 이른바 4대 백화점이었다. 여기에 박흥식(朴興植)이 세운 화신(和信)백화점까지 더해 흔히 5대 백화점이라고 했다.
이 가운데 75회 칸 초청…송강호 기분 설레고 즐거운 일 초지야백화점을 설립한 고바야시 겐로쿠(小林源六 , 1867~1940)는 일본에서 1904년 해협을 건너 한반도에 들어와 탁월한 사업감각과 총독부의 공식적인 지원, 그리고 행운까지 겹친 덕에 초지야를 일류 회사로 키워 히로히토 천황이 하사하는 ― 일본 본토의 경제인들도 받기 힘들었던 ― 청색동엽장(靑色桐葉章)까지 받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독실한 불교도였던 그는 단순히 식민지 조선에서 사업을 통해 부(富)를 축적한 것이 아니라 지역의 자선사업을 지원하고 토박이 승려들을 보살폈으며, 또한 가난한 이들을 교육하고 경성 본점에 이례적으로 조선인을 많이 고용하는 등 사업과 자선을 배합한 자칭 ‘불교적 상도(商道)’의 방식으로 ‘내선융화’(內鮮融和) ― 즉 일본과 조선의 융화 ― 를 실천한 대표적 인물이기도 했다.
고바야시와 같이, 일제강점기(1876~1945) 당시 일본 본토에서 한반도로 건너온 사람들은 (30만 명의 군인까지 포함하면) 100만 명에 이른다. 이는 19~20세기 세계 식민/제국주의 역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이들의 대량이주였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많은 일본인들이 조선으로 건너왔을까? 그들은 조선인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했을까? 이주 정착민들과 식민국가는 어떤 관계였을까?

제국의 브로커: 사적 부(富)의 추구를 넘어 식민권력의 대리인 내지 앞잡이 역할까지

이 책은 바로 이들, 지금까지 제대로 밝혀지지 75회 칸 초청…송강호 기분 설레고 즐거운 일 않은 재조(在朝) 일본인에 대한 역사를 ― 저자 우치다 준이 개념화한 ― ‘정착민 식민주의’(settler colonialism)라는 시각을 통해 식민지 조선에 대한 통치의 각 단계마다 그들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이를 통해 저자는 지금까지 일본의 조선에 대한 식민통치가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라는 강압적 억압기제를 통해 핍박받는 조선 민중이라는, 당시의 역사를 이분법적 사고체제로 고착시켜 왔다고 비판하면서 그동안의 역사에서 묻혀 있던 이들 정착민 식민주의자들에 대한 역사적 시선과 관심을 촉발한다. 또한 저자는 고바야시와 같은 이주 정착민(재조 일본인)들을 ‘제국의 브로커들’이라고 명명하면서, 이들이 단순히 개인적인 부의 축적뿐만 아니라 식민권력의 대리인이나 앞잡이 역할도 했던 중재자적 지위도 포착하게 해준다. 즉 정착민들은 식민권력의 내부기제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렌즈의 역할을 하는데, 이들의 행적과 남긴 문서들을 추적해보면 식민권력의 주변인들처럼 보이는 이들이 사실은 제국의 가장 중요한 일부 전환기들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 일본인 정착민들은 자본주의와 언론활동에서부터 참정권과 자치에 대한 논의, 소비문화, 그리고 사회통제 기술에 이르는 근대성에 수반되는 모든 과정들에 영향을 끼치면서 직간접적으로 조선의 구조와 현지 행정체계를 만들어나갔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하위제국주의자에서 국가기관으로까지 변화해가는 카멜레온적 역동성, 그리고 조선인 엘리트들과의 관계

일본의 근대화 과정 속에서 메이지 시대의 지도자들은 일본열도와 불과 192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조선반도가 ‘일본의 심장을 찌르는 비수(匕首)’여서 국가안보에 결정적인 요소라고 거듭 공언했다. 조선은 또한 제국 일본을 세계무대로 등극시킬 중국대륙으로 가는 관문이자 만주와 인접한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러시아 차르(Tsar)제국과의 충돌을 막아줄 완충지였다. 이런 맥락 위에서 조선반도에 일본인들을 입식하는 것은 일본의 국가 및 제국건설을 좌우할 열쇠나 다름없었다. 일본 정부와 식민지 기획자들은 이를 메이지 일본의 첫 대규모 식민지였던 홋카이도(北海道)에 이주해 정착한 사람들과 같은 강인한 농업개척자들의 이주로 실현할 생각이었다. 조선을 홋카이도보다 인구밀도가 훨씬 높았음에도, 그들에게는 75회 칸 초청…송강호 기분 설레고 즐거운 일 조선 또한 일본 국내의 과잉 농업노동력을 반출할 수 있는 ‘정착 식민지’로 여겨졌다.
그러나 일본이 이런 공식정책을 구체화하기 훨씬 이전에 일본 간사이(關西) 지역 하층민들을 중심으로 더 나은 삶을 좇아 부산항과 인천항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들 정착민 식민주의자들이었다.
저자는 이들로부터 시작된 정착민 식민주의자들의 역사적 단계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제1부는 19세기 말 수십 년과 1910년대 총독정치 초기 10년간 진행된 일본의 팽창(75회 칸 초청…송강호 기분 설레고 즐거운 일 조선 침략)형성 시기로, 평범한 일본인들이 어떻게 하위제국주의자(subimperialist)로 변신해 자신들의 이주사(移住史)를 조선과 메이지 일본의 두 혁명적 맥락 속에 새겨넣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1905년 을사늑약 시점에 이르면 물리적으로 조선에서 확고하게 자리 잡았을 뿐만 아니라 제국정치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며, 그리하여 통치를 중앙집권화해서 질서를 유지하려던 식민당국의 노력과 점차 충돌의 강도를 더해가기까지 했다. 1910년 합병조악 뒤 새로 부임한 데라우치 총독의 집권 아래에서는 모든 조선 거주민들을 단일한 통치체제 아래 두겠다는 방침의 일환으로 일본인 정착민들의 자치를 폐지했을 때, 그 긴장은 최고조에 달하기도 했다. 이런 갈등 속에서 제국의 브로커들 제1세대가 등장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그러나 1919년 3·1운동으로 조선의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사태가 돌발하자, 식민당국과 일본인 정착민들은 자신들의 팽창전략을 재정비할 수밖에 없었다. 제2부에서는 바로 이 시기, 즉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독의 집권 아래 표방한 ‘문화정치’ 10년간의 시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는 이 시기의 정착민 식자들로부터 사업가에 이르기까지 제국의 브로커들이 어떻게 관료들과 힘을 합쳐 동요하던 식민사업 재건에 참여하면서 조선 통치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분투했는지를 검토한다. 특히 이 시기에 이들 일본인 정착민들은 이념, 언론의 담론, 경제, 그리고 식민지 정치의 영역에서 총독부의 동맹자이면서 동시에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움직였던 양가적 특성을 분명하게 노출시켰다는 데 초점을 맞추면서, 다양한 층위의 조선인들을 ‘친일’조직화해 내선융화라는 범아시아주의 이념 선전에 앞장서는 모습도 보여준다. 이 시기에 이러한 각각의 사업들을 추진하면서 제국의 브로커들은 조선인들과 적으로서 뿐만 아니라 동지로서의 관계를 심화시키기도 했다. 일본인 정착민들은 유력한 조선인들과의 협력을 통해 자신들의 식민지배와 식민지 정치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는 수단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제3부에서는 1920년대 말에 정착민들과 조선인 엘리트들, 그리고 식민국가 간의 깨지기 쉬웠던 관계가 1931년 일본이 만주를 점령함으로써 큰 변화를 겪게 되는 과정을 짚어보고 있다. 즉 1930년대부터 1945년 말까지 이어진 일본의 군사적 팽창정책은 제3부의 내용을 구성하는데, 거기서는 제국의 브로커들이 그 활동과 상상력을 한반도 경계 너머까지 확장하면서 어떻게 국가의 기관으로 변신해 가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한반도 통일, 멀고도 험한 길: 독일 통일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이와 같은 연속적인 역사적 단계를 통해 제국의 브로커들은 식민국가 안팎을 넘나들고 정책의 입안에서부터 공동체 관리에 이르는 다양한 영역에 걸쳐 활동하면서, 정치적 해결사와 조언자, 비평가와 선전가, 자본의 대리인과 일본 문화의 전달자로서 공식적인 정책 프로그램들에 끊임없이 개입했다. 그리고 영향력 있고 지식을 갖춘 지역(조선)거주자인 자신들이야말로 제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안내하는 데 최적격의 존재임을 끊임없이 주장했다. 더 나아가 이들은 본국 정부가 조선반도를 단순히 쌀 생산기지로 묶어두려던 계획을 비판하면서 산업화 정책을 추진할 것을 요구함은 물론, 참정권 청원운동을 벌이고, 만주로 진출하고, 동화정책에 반대하면서 자신들만의 문화와 이념, 지배방식을 분명히 표출해 식민정부와는 완전히 다르지는 않더라도 그들만의 독특한 권력체계를 만들어냈다.
따라서 저자는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조선총독부-조선 민중’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탈피해 보다 다차원적인 측면에서 파헤쳐야만 그 전체상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옮긴이의 말대로, 대다수 한국인들은 항일독립운동사나 군대와 경찰을 앞세운 군국 일본, 총독부의 침탈사적 관점에서 기술된 서사나 연구물로 익숙해진 일제강점기를 일본인 정착민들을 주역으로 내세운 이야기를 통해 바라보는 것은 매우 새롭다고 볼 수 있다.

1945년 일본 패망과 함께 역사 속에서 사라져버린 일본인 정착민들의 역사

1945년, 일본의 패망과 함께 이들 일본인 정착민들은 거의 다 본국으로 철수했다. 그런 거대한 규모에다 이미 깊이 뿌리를 박고 살던 정착민들의 갑작스러운 이동은 그 자체가 충격적인 현상이었다. 하지만 “패전에 따른 이 물리적 철수는 그들이 역사에서 거의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에 비하면 덜 충격적인 일이다. 조선 땅에서 뿌리째 뽑혀나간 고바야시 같은 정착민들은 일본 역사에서 멀어졌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공적 기억에서 거의 모두 사라졌다.” 그러니까 일본인 정착민들의 역사는 저자인 우치다 교수가 분석하고 종합적으로 재구성하기 전까지는 아예 역사의 장에서 통째로 사라졌거나 부분적 단편들로만 존재했던 것이다. 그 충격적인 그들의 소실이야말로 저자로 하여금 이 책을 쓰게 만들었고, 그리하여 그들을 일본의 제국사(근현대사) 및 조선(한반도)의 근현대사를 복귀시킨 것, 그것이 이 책이 이루어낸 가장 중요한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당시의 수많은 역사적 자료를 비교분석하고, 또한 세계적 차원에서 벌어진 식민/제국주의의 다양한 양상까지와도 비교분석함으로써 저자는 일본인 정착민들의 실상을 보다 더 객관적 차원에서 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해주고 있다. 이런 학문적 성과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2012년 미국역사학회가 수여하는 권위 있는 존 킹 페어뱅크(John King Fairbank)상과 AHA Pacific Coast Branch Book Award의 수여로 75회 칸 초청…송강호 기분 설레고 즐거운 일 나타났다.

회원리뷰 (3건) 리뷰 총점 9.7

우치다 준 작가가 미국에서 출판한 작품. 일본이름이지만 아직 일본내에서는 출판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식민통치에 대한 책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출판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그동안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던 조선 땅에 살던 일본인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여태까지 그저 식민통치가 일본제국 정부에 의해서 강압적으로 당했다고만 생각했지만 이 책은 그러한 편견을 깨;

우치다 준 작가가 미국에서 출판한 작품. 일본이름이지만 아직 일본내에서는 출판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식민통치에 대한 책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출판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그동안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던 조선 땅에 살던 일본인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여태까지 그저 식민통치가 일본제국 정부에 의해서 강압적으로 당했다고만 생각했지만 이 책은 그러한 편견을 깨 줍니다. 조선땅에 살면서 브로커 노릇을 하는 일본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했는지 팩트에 기반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역사학자 우치다 준 스탠퍼드대 교수가 쓴 <제국의 브로커들>은 지금까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식민시대 일본인들의 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재조명한다. 일제 식민통치는 조선총독부라는 강압적 권력에 핍박받는 조선 민중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이해되어왔다. 저자는 역사에서 묻혀 있던 일본인 정착민으로 시선을 돌린다. ‘제국의 브로커’로 명명된 이들은 식민권력의 대;

역사학자 우치다 준 스탠퍼드대 교수가 쓴 <제국의 브로커들>은 지금까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식민시대 일본인들의 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재조명한다.

일제 식민통치는 조선총독부라는 강압적 권력에 핍박받는 조선 민중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이해되어왔다. 저자는 역사에서 묻혀 있던 일본인 정착민으로 시선을 돌린다. ‘제국의 브로커’로 명명된 이들은 식민권력의 대리인이나 앞잡이 역할을 하는 동시에 자신들 이익을 위해선 제국 통치에 저항하고 조선인과 협력하는 다층적인 모습을 보였다. 정착민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제국의 가장자리와 틈새를 들여다”보게 한다. 1880년대 부터 조선으로 건너와 상업활동과 고리대금업 등에 몰두했던 일본인들은 1905년 이후 반도로 건너온 엘리트 일본 통치자들과는 상이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경계에 서 있던 일본인 정착민들은 끝내 제국의 취약성을 보지 못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다수 정착민들은 일반적으로 조선인들의 정직성을 의심했으나 자신들이 가르치는 학생이나 동료들, 그리고 직원들이 옳다는 믿음 속에 행동하리라는 것을 거의 믿어 의심치 않았다. 믿음에 눈이 멀어 그들에게 가장 가까웠던 조선인들이 ‘위장된 친일파, 체념한 친일파, 총구 앞의 친일파’라는 사실을 보지 못했으며, 대다수 조선인들의 굴종이 총력전 체제 아래에서 강요당한 허구라는 사실을 보지 못했다.”

[Review] 제국의 브로커들 (우치다 준 著, 길)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M******m | 2020.11.01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일제 강점기 기간을 살펴 보면 우리는 보통 조선총독부와 조선 민중 사이의 대립만을 떠올립니다. 일제 강점기 한반도에 조선총독부로 대표되는 공적 기관과 75회 칸 초청…송강호 기분 설레고 즐거운 일 그에 종사하는 일본인, 그리고 조선인만 있었을 리 없다는 것은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일본 민간인들도 함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제국의 브로;

일제 강점기 기간을 살펴 보면 우리는 보통 조선총독부와 조선 민중 사이의 대립만을 떠올립니다. 일제 강점기 한반도에 조선총독부로 대표되는 공적 기관과 그에 종사하는 일본인, 그리고 조선인만 있었을 리 없다는 것은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일본 민간인들도 함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제국의 브로커들 (우치다 준 著, 한승동 譯, 길, 원제 : Brokers of Empire: Japanese Settler Colonialism in Korea, 1876-1945)”은 일제 강점기 시절 한반도에 건너 온 70만에 달하는 일본인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들의 숫자는 20세기 식민지 국가에 만들어진 공동체 중 규모가 가장 큰 것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정도에 비견될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본이 패망하자 그들은 본국으로 대부분 송환되었고 역사에서 사라져 버렸고 일본인들은 이들을 가해자가 아니라 희생자로 간주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많은 정착민들은 자신의 개척에 대한 고투를 술회하지만 제국주의 정치와 자신과의 관계는 없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과연 그들은 단지 자신의 터전을 떠나 이국 땅에 정착한 하층 계급으로 희생자로 열심히 살았을 뿐 제국주의와는 관련이 없었을까요?

이 책을 통해 저자인 우치다 준 (Jun Uchida)은 왜 그토록 많은 일본인이 조선으로 건너 갔는지, 그들은 조선인 그리고 총복부와 어떤 상호작용을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자는 그들을 ‘제국의 보로커’라는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였지만 나아가 정착민의 단결을 유지하고, 본국 자본과 문화의 통로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제국의 식민 권력의 앞잡이 역할까지 수행한 그들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언론, 상업회의소, 부협의회 등 다양한 기관을 활용하거나 스스로 만든 조직이나 기구를 활용하여 식민 정치의 주변부에만 머무르지 않고 조선 통치에 대한 영향력을 점차 넓혀 갔습니다.

“제국의 브로커들”에서 저자는 앞서 이야기한 식민지 내의 일본인 정착민들의 개인의 삶을 고바야시 겐로쿠(小林源六)’의 사례처럼 자세히 살피면서도 전체적이고 거시적인 흐름도 놓치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저자가 일본 제국을 바라보는 관점은 완성된 제국으로서 식민지를 경영하기 시작한 서구 열강과는 다르게 미완의 제국이 조선을 침탈하면서 본격적으로 제국의 완성을 이루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식민 정치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일본인 정착민들의 역할 역시 제국의 형성에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며 막연히 희생자만은 아니라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지금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조선 내 일본인 정착민에 대한 경계인적 성격을 가진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독서 경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 인기 브로커

[ 도움뉴스 김경숙 기자 ] ( 사 ) 한국영화인총연합회 대전광역시지회 ( 회장 성낙원 ) 는 제 75 회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 송강호 ) 수상을 기념해 영화 “ 브로커 ” 를 지난 16 일 메가박스 대전중앙로점에서 감상하고 , 6 월 사랑나누기 영화산책을 성황리에 마쳤다 .

이날 행사는 대전지역 문화예술인 ,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대전지부 보호대상자 , 장애인 , 후원인 등 총 170 여 명을 초청해 무료 영화감상을 했다 . 영화 감상 전 특별행사에 “ 브로커 ” 조연으로 해진 역을 맡은 아역배우 임승수 군이 깜짝 무대인사를 했다 . 그리고 행운권 추첨을 통해 60 75회 칸 초청…송강호 기분 설레고 즐거운 일 여 명에게 행운의 선물도 증정했다 .

아역배우 임승수 군은 무대인사에서 “ 자기소개를 하고 < 브로커 >영화를 많이 봐 주시고 , 사랑해 주세요 ” 라고 당찬 모습을 보여줬다 . 그리고 “ 그동안 영화 12 편 , 드라마 15 편에 출연했는데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 사랑의 불시착 >으로 촬영 할 때 춥고 많이 힘들었는데 엄마의 사랑으로 이겨냈습니다 ” 라며 추억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며 큰 박수를 받았다 .

영화 < 브로커 >를 감상한 워크인투코리아 강대훈 대표는 “ 아기의 ' 생명 ' 을 통해 여러 현실적인 메시지와 묵직한 위로를 주는 영화이다 . 가슴으로 보고 느끼고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어 좋았다 ” 라고 전했고 “ 해진 역의 임승수 아역배우까지 참석해 너무나도 분위기 좋은 아름다운 영화 산책이었다 ” 라고 흥분된 마음을 전했다 .

성낙원 회장은 인사말에서 “ 지금의 한류는 K-Culture 입니다 . K-Culture 의 확산에는 전통문화 , 문화와 예술 , 문화콘텐츠 이 세가지 구성 요소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 K- 무비는 국제영화제를 석권했고 , K- 팝은 세계를 연결했으며 , K- 드라마는 전 세게 안방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 한국 문화 , 이제 이전과 다른 단계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 < 한국이 만들면 본다 >는 공식처럼 ‘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 ’ 이라고 이야기 했는데 이제 현실이 되었습니다 . 한국의 최고가 세계의 75회 칸 초청…송강호 기분 설레고 즐거운 일 최고가 되는 것입니다 . 6 월 사랑나누기 영화산책에 참가하신 문화예술인 여러분도 한류의 중심에 설 수 있습니다 . 그리고 영화 한편 감상하는 것도 한류의 바람을 거세게 일으키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 라며 앞으로도 많은 관람을 당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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