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기 브로커

마지막 업데이트: 2022년 3월 19일 | 0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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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 화려한 칸 데뷔+사인요청 쇄도…‘브로커’ 최고 인기 스타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이하 칸 영화제)를 찾은 ‘브로커’ 주역들 중 최고 인기 스타는 단연 아이유였다. 가수 겸 배우 아이유(이지은)가 칸 영화제에서 화려하게 데뷔했다.

26일 오후 7시(현지시각, 한국시각 27일 오전 2시)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칸에서 열린 칸 영화제의 팔레 데 페스티벌(Palais des Festivals)의 뤼미에르 대극장에서는 ‘브로커’ 월드 프리미어 상영이 진행됐다.

‘브로커’는 베이비 박스를 둘러싸고 관계를 맺게 된 이들의 예기치 못한 특별한 여정을 그린 영화다. 칸 영화제에서 ‘어느 가족’(2018)으로 최고 영예에 해당되는 황금종려상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로는 심사위원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첫 번째 한국 영화 연출작으로, 올해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황금종려상 수상 이력이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인 만큼, 이날 칸 영화제에서는 ‘브로커’ 공식 상영 티켓을 구하려는 많은 이들의 모습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무엇보다 케이팝 스타를 보러 온 해외 팬들의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아이유 사진을 들고 스타의 등장을 기다렸다.

올해 칸 영화제를 처음 찾은 아이유는 어깨와 몸매가 드러내는 그레이 컬러의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등장, 우아한 매력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레드카펫을 걸어가던 아이유는 팬들이 모인 곳으로 몸을 돌려 이들에게 다가가 사진 및 사인 요청에 일일이 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아이유는 평소 팬 사랑이 남다른 스타로 알려진 만큼, 이번 칸 영화제에서도 여전한 팬 서비스로 칸 영화제에 열기를 더했다. 특히 아이유는 몰려드는 사인 요청에 응하다 마지못해 레드카펫으로 끌려가며 더이상 팬들과 소통하지 못하게 되자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이날 칸 영화제에서는 아이유를 ‘배우 이지은’으로 소개하기도 했으나, 영화를 보고 나온 다수 프랑스인 관객들은 그를 K팝 스타로 인지하고 있어 놀라움을 안겼다. 아이유는 ‘브로커’에서 자신이 낳은 아기의 새 부모를 찾는 여정에 함께하게 되는 소영 역을 맡아 본격적인 스크린 행보에 나섰다.

무엇보다 아이유는 ‘브로커’에서 아기 우성과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비밀로 묻어둔 채 브로커와 여정을 시작하는 소영 역으로 분해 초반에는 강렬한 모습을, 중반부를 지나면서부터는 담담하면서도 성숙한 면모와 눈빛 연기로 몰입도를 높였다.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등 선배 배우들과의 연기 호흡에서도 자신의 캐릭터로 존재감을 남기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의도한 가족에 대한 메시지를 보여주는 연기를 선보였다.

영화 상영이 끝난 직후 ‘브로커’는 12분간의 뜨거운 기립박수를 받았다. 올해 칸 영화제에 초청됐던 한국영화 중 가장 긴 기립박수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브로커’의 주역들을 소개했고, 아이유는 쑥스러운 듯하면서도 감동을 받은 듯 조용히 미소 지으며 박수를 치는 모습으로 스크린에 포착되기도 했다.

한국 인기 브로커

의 또 다른 제목을 ‘그렇게 어머니가 된다’라고 명명할 수 있지 않을까. TV다큐멘터리를 만들던 시절부터 소외계층의 일상으로 들어가 사실 이면의 본질을 읽어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이번에 주목한 소재는 베이비박스다. 를 만들며 일본의 입양 제도를 조사하다 알게 된 아기 우편함과 비슷한 시설이 한국에도 있고, 한국의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아이가 일본의 10배 이상이라는 사실을 접한 그는 한국을 배경으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평소 함께 작업하기를 갈망했던 배우 송강호와 강동원, 배두나 그리고 한국 스탭들이 한데 모일 수 있는 프로젝트로 추진하기에도 적절한 아이템이었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버린 엄마, 그 아이를 빼돌려 제3자에게 돈을 받고 팔려는 브로커들, 그리고 그들의 뒤를 쫓는 경찰들이 함께하는 의 여정은 갓난아기를 흥정하는 범죄행위에서 아기를 지키기 위한 느슨한 연대로 바뀌어간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인생 같은 것은 없다는, 누구의 삶도 가치 있다는 말은 이상적이지만 그만큼 막연하고 때로 공허할 수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다양한 형태의 모성과 제3자들의 선의가 다소 추상적인 주제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의 설명을 빌리자면 “어머니가 되는 길을 포기한 경찰 수진(배두나)과 갓난아기를 낳은 미혼모 소영(이지은)이 여정을 통해 각자 다른 형태의 모성을 보여주고” 이는 세상에서 가장 약한 존재, 아이의 미래를 약속하는 끈이 된다. 생의 가치라는 보다 근원적인 담론을 담은 만큼 기존 작품에서 보여주던 서늘한 시각도 다소 절제했다. 선악의 모호함을 넘어 명백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까지 차갑게 내치지만은 않는 온정이 느껴지는 이번 작품을 두고 일견 전작과 다른 노선을 택했다고 평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럼에도 는 여전히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천착해온 ‘남겨진 사람들’의 계보에 추가할 수 있는 작품이며, 참혹한 현상 이후의 실현 가능한 희망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의미가 있다.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칸국제영화제 폐막식 이후 바로 한국에 들어와 바쁜 홍보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만났다.

*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일본의 아기 우편함에 대한 다큐멘터리와 한국의 베이비박스에 대한 기사를 보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일상에서 접하는 많은 소재 중 유독 베이비박스에 끌리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나. 역시 현실에서 아버지가 됐기 때문일까.

= 아버지가 됐다는 사실이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작품은 였다. 거기서부터 파생된 무언가가 에 반영되기도 했겠지만 나는 언제나 어린 시절을 빼앗긴 아이들의 이야기에 본능적으로 끌렸다. 때부터 아이가 놓인 사회적 상황에 계속 관심을 두는 이유를 물어보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 스스로도 명쾌한 답을 알지 못한다.

- 크게 봤을 때 브로커와 미혼모, 경찰 그룹이 삼분되어 영화를 이끈다. 처음부터 정해진 구도였나.

= 처음에 썼던 짧은 플롯에서부터 이미 잡혀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좀 경과된 후 캐스팅 과정을 거치면서 수진과 소영, 두 여성이 어머니가 되어가는 이야기로 방향을 잡게 됐다. 수진은 어머니가 되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던 여성이다. 그런 캐릭터가 브로커와 미혼모를 오해하는 상태에서 이야기가 시작됐으면 했다. 여기에 소영이 우성(박지용)의 친부를 죽였다는 설정을 더함으로써 수진의 오해는 중첩된다. 하지만 수진의 편견은 브로커들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조금씩 변하게 되는데, 그들의 여행은 우성을 팔기 위해 시작됐다가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형사(이주영)는 수진이 정의로움에서 벗어날 때 이를 말리는 역할을 하며 관객에게 정의의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끔 한다.

그렇게 모두가 살아간다

- 캐스팅 과정에서 ‘두 여성이 어머니가 되어가는 이야기’로 시나리오의 방향이 정착했다면, 배우에게 영감을 받은 요소가 있다는 뜻인가.

= 이지은씨를 화상 미팅으로 처음 만났을 때 의지가 매우 강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실제 이지은씨의 강인함을 살려 소영 캐릭터를 만들었다. 또 드라마나 노래를 통해서도 이미 알고 있던 바였지만, 이지은씨의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대사를 떠올리게 됐다. 시나리오 작업 중간 단계에서 이지은씨 캐스팅 이후 추가된 장면이기 때문에 그가 없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신이다. 배두나 배우에게는 120%의 신뢰가 있었다. 그가 연기하지 않았다면 수진은 관객이 비호감을 느낄 수도 있는 혹은 전형적인 형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캐릭터가 됐을 것이다. 그런데 배두나씨는 형사이면서 동시에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인물로 수진을 표현했다. 때문에 수진은 배두나씨가 아니면 만들어질 수 없는, 배두나씨를 전제로 해서 만들어갔던 캐릭터다. 배두나 배우라면 두 여성이 함께 어머니가 되어가는 여정을 성립 가능하게 만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 배두나 배우는 시나리오 작업에도 도움을 줬다고 들었다.

= 는 밖에 버려진 아기를 베이비박스에 놓았던 수진으로부터 시작해 이야기가 한 바퀴 돈 후 다시 아이가 수진 곁으로 돌아오는 구조다. 이 시나리오가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배두나 배우가 있어야만 했다. 배두나씨의 매력은 대사를 한국 인기 브로커 칠 때 굉장히 풍부한 감정을 표현해낸다는 점에 있다. 배두나씨, 그리고 언제나 나와 함께해주는 통역사와 일본어 원문과 한국어로 번역한 시나리오를 비교하며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배두나씨는 내가 평소에 쓰는 대사의 맛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번역 과정에서 원래 뉘앙스가 제대로 보존됐는지 계속 질문했다. 이를테면 강력계 형사 특유의 말투라든지, 수진은 지적인 형사라는 설명을 들었는데 지금 번역된 시나리오에선 지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등 디테일한 확인 작업을 함께하며 대사를 대폭 수정해갔다.

- 칸 현지에서 기자들과 가진 티타임 자리에서 미리 정해둔 콘티대로 작업하지 않는 스타일을 이번에도 고집했다는 말을 전했다. 부산국제영화제 때문에 한국을 자주 찾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당신은 외부인이다. 완벽한 준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프로덕션 과정에서 불확실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고민은 없었나.

= 어떤 공간에 배우가 들어가서 연기를 할 때, 어디서 어떻게 찍으면 될지 그 자리에서 대략 파악하는 일은 자신이 있다. 반대로 사전에 많은 부분을 약속해놓고 현장에서 변수가 생겨서 수정하는 쪽이 내겐 더 힘들다. 함께하는 스탭이 우수하다면 연출을 크게 정해두지 않고 배우가 움직여도 어느 정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또한 는 로드 무비이기 때문에 이야기 구조나 카메라의 시점이 생활자가 아닌 여행자의 시선을 담고 있다. 때문에 그때그때 내가 보고 느낀 바를 담아내도 영화가 성립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 그동안 한국을 자주 찾았지만 로케이션 장소로서 바라보며 전과 다른 인상을 받았을 것 같다. 실제 헌팅을 시작한 후 관찰한 한국 해안 도시의 풍경은 어떻게 다가왔나.

= 영화에 담는다는 전제로 부산을 바라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언덕과 계단, 단차가 있는 거리 풍경이 매우 인상적이라 영화에 의식적으로 담았다. 산과 바다가 가까이 있다는 도시의 특징 또한 잘 살리고 싶었다. 마지막 신에 나오는 해변은 석양이 내리는 바다였으면 했다. 분수대 장면만 대구에서 찍고 나머지는 여정의 시작점이었던 부산에서 촬영했다.

- 세탁소는 상현(송강호)의 캐릭터 설정에 그치지 않는다. 세탁물이 담긴 차가 로드 무비의 이동 수단이 된다. 세탁물과 부대끼는 그림이 의 여정과 어울린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나.

= 세탁소 설정 자체는 초기 단계에서 결정됐다. 동수(강동원)가 교회를 드나들기 위해 적합한 업종을 생각하다 배송할 수 있는 치킨집과 세탁소를 떠올렸는데, 이중 세탁소는 주인공들이 영화 중반에 자연스럽게 옷을 갈아입는 연결점을 만들 수 있었다. 세차장에서 물을 맞은 후 상현과 동수, 소영이 갈아입은 의상을 통해 그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 의 아이들은 참혹한 결말을 맞지만 의 우성에겐 그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어른들이 있다. 만약 비 오는 날 버려진 우성이 방치된 채 성장했다면 속 아이들과 같은 상황에 놓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20여년 전과 달리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에게 어떤 희망을 주고 마무리한 것은 당신에게 생긴 변화인가.

= 잘 모르겠다. 앞으로 또 참혹한 상황에 놓이는 아이들을 찍을 수도 있다. 의 결말이 지금과 같은 형태를 띠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본에서 아기 우편함에 관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보육원 출신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취재 과정에서 한국의 보육 시설에서 자란 분들과도 화상으로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과연 내가 태어나길 잘한 것인가, 내가 태어남으로써 누군가를 특히 어머니를 불행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을 품은 채 어른이 됐고 그 의심을 떨쳐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근원적인 불안감을 불식할 수 없는 책임은 어머니가 아닌 사회에 있다. 그들에게 태어나줘서 고맙다, 어머니도 분명 축복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단언하며 전하고 싶었다. 두 번째 이유는 송강호 배우의 존재다. 사실 처음 시나리오에서 상현은 죽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촬영하면서 송강호 배우에겐 죽음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죄를 저지른 그가 행복한 서클에 들어갈 수는 없겠지만 그는 절대 죽을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더불어 죽음으로 시작된 가 마지막에는 모두가 살아간다는 쪽으로 끝을 맺는 게 이 영화에 더 어울린다. 의 결말은 내가 변해서가 아니라 송강호 배우가 가진 근원적인 밝음에서 영향받은 바가 크다.

- 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생명의 소중함이다.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매우 직설적인 대사로도 전달된다. 그래서 우성의 친부와 상현이 예전부터 알고 지냈던 태호(류경수)의 죽음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 의 결말은 결코 해피엔딩이 아니다. 살인을 저지른 상현은 다시는 우성의 곁으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우성을 위해서 한 일이라지만 사람의 목숨을 빼앗았기에 행복한 서클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단죄되지 않더라도 윤리적인 단죄를 받아야만 한다고 판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성을 지키기 위해 상현이 취할 수 있는 수단이 그것뿐이었다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이 점을 관객이 함께 느껴줬으면 한다.

모성의 형태에 대한 고민들

- 에서 네 아이를 버리고 떠난 엄마처럼, 에서 소영이라는 소외계층은 우성이라는 또 다른 소외계층을 낳는다. 모성과 선의는 약한 사람들의 연대에서 비롯된 희망을 만든다. 그런데 왜 모성이었을까. 최근 모성애를 다룬 영화들은 여성에게 모성을 왜 강요해야 하는지 반문하며 사회적 편견을 뒤집는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소영은 우성을 위해 못할 일이 없는 여자로 묘사된다.

= 우성을 키울 자격이 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했을 때 소영은 포기하는 쪽을 선택한다. 이것 또한 일종의 모성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곁에 두고 헌신적으로 키워가는 것과는 다른,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모성과는 다른 형태를 그려보고 싶었다.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곁에 있는 사람(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부인)은 바로 어머니가 된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아버지가 됐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해 굉장히 초조한 마음을 갖게 됐다고. 어쩌면 남자들은 아이가 태어났다고 바로 부성을 느낄 수 있는 생물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가 출발한 것이다. 그런데 지인으로부터 “여자라고 해서 아이를 낳자마자 바로 모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여성에게 선천적인 모성이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는 것은 남자들의 편견이자 환상이다. 그러한 고정관념 때문에 여성들은 고통받고 있다”는 말을 듣고 통렬하게 반성하게 됐다. 그로부터 나온 캐릭터가 의 노부요 시바타(안도 사쿠라)였다. 그는 직접 아이를 낳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되고, “낳으면 다 엄마인가요?”라고 경찰에게 되묻는다. 의 소영과 수진 역시 모성의 형태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을 녹여낸 인물들이다. 수진은 아이를 낳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되어가고, 반대로 아이를 낳은 소영은 아이의 곁을 반드시 지키는 기존 어머니상과 거리를 둔다. 내가 생각했던 부분이 작품에 얼마나 잘 녹아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관객이 이번 영화에 대해 의견을 주시면 이를 다음 작품에 녹여내 또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 상현과 동수, 두 브로커의 여정에 소영이 함께하는 것은 우성을 잘 키워줄 수 있는 부모를 찾기 위해서다. 처음에 만난 부부는 아이의 외모를 평가하고 가격을 흥정하는 등 이상적인 부모가 될 수 없는 사람들로 보인다. 마지막에 만난 부부는 핏줄로 이어지지 않은 아이를 진심으로 아껴줄 수 있는 선한 인물로 묘사되고 소영 역시 마음을 연다. 영원히 답이 없는 문제일 테고 애초에 성립될 수 없는 질문일 수 있겠지만, 혹시 아이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있을까.

= 어떤 사람에게는 아이를 키울 자질이나 자격이 없다는 관점으로 영화를 다루진 않았다. 그보다는 육아를 꼭 혼자서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엄마만의 책임도 개인의 문제도 아니다. 에는 세개의 박스가 있다. 첫째는 처음에 아이가 들어간 베이비박스다. 상현과 동수, 소영이 타는 봉고차는 그보다 좀더 큰 박스가 되고 이곳에서 유사 가족이 탄생한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수진이 한국 인기 브로커 우성을 키울 수 있는 것은 사회라는 더 큰 박스가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정상적인 사람도 있고 범죄자도 있지만 그들이 충분한 죗값을 치른다면 이 세 번째 박스 안에서 아이는 자라날 수 있다. 상현은 죗값을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 세 번째 한국 인기 브로커 박스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다소 낙관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개개인의 자격보단 좀더 큰 테두리에서 아이를 지켜볼 수 있는 어른들의 존재를 생각해야 한다.

-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떠오른다. 미숙하고 때때로 사고도 치는 아이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보살피는 어른들이 있어야 아이들이 사회성을 기르며 성장할 수 있다. 이런 환경을 보장하는 사회 구조와 시스템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 바로 그것이다. 아이들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더 큰 차원의 박스가 필요하다. 일본에서도 양육을 부모만의 한국 인기 브로커 책임으로 돌리는 일이 있는데 아이를 키우는 건 모두 함께 관심을 기울여야 할 문제다.

- 이후 차기작은 넷플릭스 드라마다. 예상 밖의 행보라는 사람들도 있다.

= 아는 프로듀서를 통해 넷플릭스에서 함께 작업하자는 의뢰를 받았다. 처음에는 쇼러너로서 참여하고 주변에 있는 젊은 감독들에게 연출을 맡기려고 했다. 그런데 이왕 하게 된 거 1회 정도는 직접 연출을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있었고, 그러다 2회로 분량이 늘어나고, 결국 3회까지 연출하게 됐다. (웃음) 어릴 때 TV드라마를 많이 보고 자랐기 때문에 드라마를 영화보다 낮게 생각하지도, 드라마 작업에 거부감이 있지도 않다. 드라마에는 드라마만의 재미가 있다. 좋은 타이밍에 아주 재미있게 작업했다.

한국 인기 브로커

운동권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잠복하던 형사가 불쑥 자리를 뜬다. 그가 향한 곳은 ‘물망초’라는 업소다. 여성 종업원이 옆자리에 앉아 술 따르는 곳이다. 형사가 목소리 깔고 꺼낸 첫사랑 얘기에 종업원은 공감하는 것도 모자라 그 자리에서 남자에게 반한다. 아마도 자신의 아픈 기억을 건드렸을 남자에게, 여자는 대뜸 잠자리를 허락한다. 내가 오늘밤 당신의 첫사랑이 되어드릴게요. 함께 밤을 보낸 뒤 남자는 홀연히 떠나고 여자는 하염없이 기다린다…. 이럴 일은, 없다. 그저 남성의 판타지일 뿐이다. 이창동 감독의 (1999)의 한 장면이다. 많은 이들이 그를 리얼리즘의 거장이라 부른다.

남자 둘이 길을 떠난다. 술집 종업원이던 여자가 합류한다. 여자는 범죄를 저지른 뒤 쫓기는 신세다. 형님 격인 남자는 감옥에 다녀와 딸과 만나지 못하고 있다. 아우 격인 남자는 여자와 티격태격하다 정이 쌓인다. 여자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밝히며 마음을 나누지만 가족을 이루지는 못한다. 황석영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만희 감독의 유작 (1975) 이야기다. 동시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가 그대로 채용한 영화의 뼈대이기도 하다. 어린이와 경찰 등 인물 구성에 살이 붙었지만 ‘남 2 여 1’의 골조 속에 펼쳐지는 일종의 남성 판타지다. 성매매 여성인 처지지만 마음만큼은 주인공에게 준다는 설정. 역시 리얼리즘 계열로 분류되는 거장들이다.우리는 종종 남성 창작자들의 판타지를 모른 채 지나쳤거나 알고도 말하지 못했거나 혹은 용인해왔다. 멜로 속 여성 캐릭터에는 현실에선 허락되지 않는 남성의 욕망이 흔하게 배어들곤 했다. 이른바 ‘성녀-창녀 2분법’이다. (감독 이용주, 2012)은 어떤가. 속마음 한번 제대로 전하지 못한 첫사랑이 다른 남자에게 입술을 빼앗긴 뒤, 그녀는 주인공의 기억을 지배하는 트라우마인 동시에 극을 이끌어가는 동력이 된다. (감독 박흥식, 2000)의 주인공은 미래의 아내에게 영상 편지를 남기는 ‘순정남’ 설정인데 동료의 제안에 못 이기는 척 마사지 업소에서 성매수를 한다. (감독 배창호, 1984)까지 갈 것도 없다. 아주 예전부터 멀지 않은 과거에 이르기까지 남성 창작자들은 여성을 타자화하는 데 ‘조심’하지 않았다. 오래된 일이다.

요즘은 많이들 ‘조심’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떤 영화가 성차별적이라거나 여성만 평면적으로 그린다거나 하는 표면적인 문제가 아니다. 작자의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을, 타자화 본성의 문제다. 뜻밖에도 많은 경우의 타자화는 본성에 의해 이뤄진다. 의도가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눈에 띄지 않거나 보이더라도 말을 꺼내기 어렵거나 이야기해도 결론짓지 못하기 일쑤다. 작자가 거장의 반열에 올라 있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의 소영(이지은)이 모성애로 뭉쳐 임신 중단을 죄악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어떤 장면에서 소영은 둥그런 프레임에 둘러싸여 마치 성모마리아인 것처럼 이미지화하는가. 애초에 그녀가 성매매 여성으로 설정된 건 어째서일까….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인 만큼 더더욱, 는 좀더 많은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야 하는 작품이다.

P.S. ‘식사를 하지 못하면 배가 고프다’는 본성의 영역이다. ‘배가 고프다고 해서 음식을 훔쳐 먹으면 안된다’는 당위의 영역이다. 본성이 당위를 거스르는 면죄부가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본성과 당위를 헷갈리는 일은 사태의 실체에 접근하는 데 도움이 못된다.

영화 , 그렇게 ‘가족’이 될 수 있을까

<브로커>는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버린 성매매 여성과, 베이비박스에서 아기를 데려와 다른 가정에 돈을 받고 넘겨주는 브로커가 우연히 함께하게 된 여행을 따라가는 영화다. 2018년 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한국’ 영화라는 점에서 관심받았다. 프랑스 칸에서 먼저 공개된 <브로커>는 배우 송강호에게 한국 최초의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겼다. _편집자

*영화 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기를 암거래하려는 두 남자, 하루 만에 자기 아기를 되찾으러 왔다가 두 남자의 여정에 동행하게 된 젊은 여자, 그리고 그 여정을 뒤쫓으며 이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하려는 경찰.

2022년 칸영화제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가 공개된 뒤, 이 ‘유사가족 로드무비’에 대한 평은 극명하게 나뉘었다. 사회 음지에 은폐된 이슈를 감독 특유의 따뜻한 감수성과 통찰력으로 대면했다는 호평과, 범죄를 순진하고 진부하게 미화했을 뿐이라는 혹평이 팽팽하게 맞섰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혹평을 염두에 둔 기자들의 질문에 “흑백이 뚜렷이 나뉘는 영화”를 지향하지 않으며 “양쪽이 뒤섞이면서 어느 순간 반전”을 이루는 세계를 상상했다고 밝혔다. 영화의 문제의식은 사회적 편견을 다시 각인하는 재현이 아니라 반문하는 “회색” 지대에서 나올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의 의도에 얼마나 많은 관객이 호응할지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말은 를 지탱하는 서로 충돌하는 몇 개의 축과 그들의 경계를 점차 용해하기 위해 영화가 도입한 서사적 국면으로 생각을 이끈다.

돌이켜보면,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아이를 앞세워 가족의 테두리, 혹은 가능성을 묻는 전작들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서사를 진행했다. 이를테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에서는 6년 동안 키운 사랑스러운 아이가 다른 사람의 자식이란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의 심리적 궁지를 다룬다. 산부인과에서 뒤바뀐 친자를 뒤늦게 찾지만, 그들은 이 아이가 낯설기만 하다. 아이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자신과 함께 살던 가족을 떠나 ‘진짜’ 부모에게 오지만, 어쩐지 버려졌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낳은 정인가, 기른 정인가. 상투적인 화두와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설정은 느닷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어른만이 아니라, 아이의 내면과 시선 또한 존중한 영화의 섬세한 결 덕에 설득력을 얻는다. 인물들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지만, 결국 영화 끝에서 혈연을 넘어선 확대된 가족의 형상으로 두 물음을 온건하게 화해시킨다.

(2018)에 이르면 이 구도에 좀더 복합적인 층위가 생긴다. 혈연관계가 아닌 다섯 식구가 사는 집에 어느 날, 정체불명의 어린아이가 들어와 함께 지내게 된다. 제도에 얽매이지 않은 채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생기로운 관계가 작고 낡은 집을 입체적으로 만든다. 이들은 자신을 버리거나 책임을 다하지 않은 혈연 대신, 새로운 가족을 선택한다. 그러나 고레에다는 이 유사가족을 가족제도의 대안으로 낭만화하지 않는다. 어른들은 몸을 다치거나 해고된 뒤 더 이상 노동하지 않고 아이들의 좀도둑질을 방관한다. 제도 바깥에서 이 가족이 지켜낸 활기는 말하자면, 작지만 끈질긴 범법 행위와 분리될 수 없다. 심지어 할머니가 돌연 세상을 떠난 장면에서 남은 어른들은 그가 남긴 돈을 발견하고 기뻐하며 장례 절차 없이 그를 집 안에 매장한다. 이 공동체는 정당한가. 폭력을 은폐한 혈연제도와 도덕과 규범에서 자유로운 철없는 공동체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은 이 물음을 온전히 풀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후반부 연이어 등장하는 극단적이고 갑작스러운 대목이 그 난망함을 드러낸다. 고레에다는 이 공동체를 영화적 상상력을 통해 급진적인 화두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딱딱한 사회적 의제의 대상으로 전환하고 만다. 법의 개입으로 공동체는 와해된다. 어른들 대신 수치심과 죄의식을 짊어지게 된 소년은 자폭하듯 충격적인 선택을 감행하고, 그보다 더 어린 아이는 어떤 저항도 없이 자신을 방치하고 학대한 혈연가족에게 돌아간다. 어른들은 무력하게 감옥에 갇히거나 무책임하게 떠나버린다. 영화 말미, 아이들은 다시 혼자다. 고레에다는 인물들이 비록 뿔뿔이 흩어졌어도 함께 지낸 시간만큼은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영화의 결말을 보며 그의 낙관적인 생각을 믿기는 힘들다.

는 어떨까. 아기를 유기한 엄마 소영(한국 인기 브로커 이지은), 그 아기를 몰래 입양시켜 돈을 벌려는 세탁소 사장 상현(송강호)과 베이비박스 시설에서 일하는 동수(강동원). 동수는 말한다. “버린 사람이 있으니 파는 사람도 있지.” 버린 자와 훔친 자 중 누가 더 나쁜가. 연약하고 작은 생명체를 앞에 두고 이들은 죄의 무게를 겨룬다. 영화가 이들의 무의미하고 뻔뻔한 논쟁에 가담하는 건 아니지만, 고레에다는 서로를 탓하며 대립하는 ‘버린 자’와 ‘훔친 자’를 서사의 두 축으로 세우고 그들을 금세 같은 차에 태운다. 그의 관심은 그중 더 나쁜 자를 가리는 일이 아니라, 그들이 결핍으로 연결된 존재임을 드러내는 일로 향한다.

우선 고레에다는 친엄마와 낯선 두 남자가 아기를 밀매하러 동행하는 끔찍한 행로를 코미디적 상황을 개입시켜 유화한다. 이를테면, 아기를 사러 온 부부가 아기의 외모를 지적하며 돈을 깎겠다고 흥정하고 혹시 아기 아버지가 강간범은 아니냐고 묻는 가혹한 대목은 우스꽝스럽게 연출된다. 배우들의 연기 리듬이나 그 상황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그런 의도로 설계된 것처럼 보인다. 인물들을 조폭 영화에 등장할 법한 사악한 아기 밀매범이 아닌 허술하고 웃긴 소시민적인 사고뭉치로 그려낸 덕에 실제로 극장 안 관객은 이런 장면에서 번번이 웃음을 터뜨렸다.

무엇보다 여정에서 밝혀지는 인물들의 극적인 전사는 ‘버린 자’와 ‘훔친 자’를 한 맥락에서 공명하게 한다. 소영 역시 버려진 아이였고 성매매로 착취된 삶을 살다 임신해 아기를 낳았지만, 그 아기를 빼앗아가려는 남자를 살해하고 도주 중이다. 영화는 ‘버린 자’의 서사에 필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코미디 톤의 로드무비에 극단적인 사회범죄 드라마를 끌어들인다. ‘버린 자’의 과거가 사회범죄 드라마에 빚지고 있다면, ‘훔친 자’의 과거와 현재에는 멜로드라마의 우울이 새겨진다. 상현은 초반에는 건달에게 진 빚을 갚지 못해 아기 암거래를 계획한 비루한 인간처럼 그려진다. 후반부, 그가 오랜만에 딸을 만나 안절부절못하는 애처로운 장면에서 그에게도 브로커 일을 무릅쓴 간절한 이유가 주어진다. 상현은 아내와 딸에게 버려졌으나 그들과 다시 함께 살 날을 포기하지 못하는, 그러나 과거를 결코 되돌리지 못할 초라한 이혼남이다.

동수에게도 사연은 있다. 셋의 여정은 의아하게도 어느 보육원에서 잠시 멈춘다. 영화는 이내 그곳이 동수가 어린 날을 보낸 보육원이며, 여기 사는 아이들에게 그는 영웅 같은 존재임을 상기한다. 동수의 엄마는 보육원 바깥 한구석에 어린 아들을 두고 떠난 뒤 돌아오지 않았다. 상현이 동수의 과거를 소영에게 일러준다. 보육원 장면 이후 동수는 누구보다 소영의 아기에게 애정을 보이며 소영을 통해 엄마를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아기를 밀매하려는 인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보육원에 굳이 들러 아이들과 어울린다는 이상한 설정은 동수의 지난 행동에 얼마간 면죄부가 될 만한 서사를 안긴다.

‘버린 자’와 ‘훔친 자’가 공동의 운명을 나눠지고 심리적으로 융화되는 동안에도 영화에는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축이 남아 있다. 셋을 줄곧 미행하던 수진(배두나)과 이 형사(이주영)는 아기가 밀매되는 현장을 포착하려고 상황을 유도하지만 잘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소영을 체포하는 일보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범죄를 기다리는 일이 더 중요해 보인다. 수진에게는 “멋대로 낳고 멋대로 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오랜 원한이 있는 것 같지만, 그 사연은 나오지 않는다. 수진이 소영과 마주한 밤, 수진의 날카로운 추궁에 소영이 반문한다. “낳고 나서 버리는 것보다 낳기 전 죽이는 죄가 더 가벼워?” 소영의 선택을 범죄드라마의 인과 안에서 이해하며 연민을 실어주던 영화는 이 지점에서 다시 한번 그의 마음에 수긍한다. 그러나 아무리 소영의 특수한 처지를 고려한 것이라 해도 이 대사의 억지스러움과 위험함은 해소되지 않는다. 아기 유기와 임신중단은 같은 시소에 올려두고 무게를 비교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다. 소영의 희생정신과 모성을 비추기 위해 영화가 동원한 이 반문은 임신중단 권리에 손쉽게 죄를 입힌다. 그 태도는 감상적이고 무지하다.

가 무리한 논리를 끌어들이며 인물들에게 진부한 전사를 덧씌워 닿으려는 목적지는 어디일까. 후반부, 그들의 급작스러운 결단과 서사의 급변한 흐름은 ‘버린 자’ ‘훔친 자’, 그리고 이들을 쫓는 자의 도덕적 결함을 한꺼번에 정화하려는 영화의 시도일 것이다. 영화는 아기를 둘러싸고 죄의 경중을 말하던 철모르는 이들을 이제 아기를 중심으로 도덕적으로 회복시키는 데 몰두한다. 아기를 지키기 위해 버렸다는 소영의 앞선 주장에 화답하듯, 에필로그에서 인물들 모두는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아기의 선한 보호자가 돼 있다. 심지어 이 아기를 돈으로 입양하려다 경찰이 짠 덫에 걸려 발각됐던 부부의 모습마저 보인다.

아기의 “미래에 대해 다 같이 의논하면 좋겠”다는 수진의 마지막 음성은 그러나, 유기와 밀매의 그림자로 얼룩졌던 세계가 한순간 맞이한 성숙한 도약의 깨달음으로 들리지 않는다. 이 결말은 영화가 토대로 삼은 현실의 모순과 갈등을 착한 어른과 무결한 유사가족에 대한 다소 강박적인 환상 속에 매끈하게 봉인해버린다.

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꿈꾼 선의로만 기능하는 공동체 혹은 연대의 형상은 혈연중심적 가족주의 환상만큼이나 낡고, 에서 좀도둑질로 생계를 꾸리던 비도덕적 비혈연 공동체보다도 퇴화한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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